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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리고 믿는다.

그런데 정작 영어 단어 revolution의 유래는 잘 몰랐다. 그 유명한 코페르니쿠스가 꺼낸 말이었구나. 책을 보고나서 알았다. 언론이며 광고에서 발상의 전환이니, 생각을 뒤집니 하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라는 말을 상용어구 처럼 사용해서, 뭔가 흔하다고 생각했나보다. 흔하디 흔한(?) 위대한 과학자. 그러니까, 대단하다는 의식이 보편적이라서 오히려 나의 의식은 이 대단한 코페르니쿠스를 대단치 않은 부류로 규정짓고 있었던 모양이다. 철학 콘서트인데 왜 코페르니쿠스가 있을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알게 되었다. 어렴풋이 '그래, 대단하지. 대단한 이론, 발상의 전환...'하고 넘기던 그의 사상이, 당시의 시대상과 맞물려서 생각해보면, 정말 소름 끼칠 정도의 혁명적 이론이었다는 것을. 흔히 말하는 ‘시대를 앞서가는’ 혹은 ‘선도하는’ 사상이 아닌, 시대를 바꿔버린 사상. 맑스와 레닌의 변혁이론보다 더욱 변혁적인. 시대적 맥락에서 읽어낸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이론은 그런 이론이었다. 

p.101  
 ‘태양은 움직이지 않아요.’ 아침이면 동쪽에서 떠서 저녁엔 붉은 노을을 물들이며 서산으로 지는 저 태양이 움직이지 않는단다. 아마도 과학의 이름으로 미치광이 같은 발언을 한 사람으로 치부된 과학자를 꼽으라면 코페르니쿠스 말고 찾기 힘들 것이다. 사실, 지구와 태양의 관계처럼 현상과 본질의 관계가 거꾸로 된 경우도 찾기 힘들다.

 현상과 본질. 현상은 겉모습을 나타낼 뿐이지만, 본질은 내적인 측면이며 그 내용을 규정한다. 대부분의 현상이 가변적이고 일시적이라면, 본질은 항구적이다. 대부분의 현상은 본질을 나타내지만, 때에 따라서 어떤 현상은 본질을 가리기도 하고 뒤틀기도 한다. 아침저녁으로 뜨고 지는 태양이 현상이라면, 자전하는 지구는 본질이다. 현상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본질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본질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생각하는 힘이다. 이론이다. 그리고 사상이다. 현상에 집착하지 않는 통찰만이 본질을 보게 한다. 본질을 볼 수 있게 한다.

코페르니쿠스 왈,

현상에 의해 본질이 가려져도 너무 가려진, 태양과 지구의 관계의 본질을 밝혀 낸 코페르니쿠스. 말할 것도 없이 그는 천재다. 1800년의 역사와 인류가 단 한번도 의심한바 없는 자명한 진리였던 지구중심이론을 뒤집어 버린 이론을 내놓은 천재. 무수한 자료와 사료들이 하늘의 운행에 관해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론들의 작은 균열을 참을 수가 없어서 그는 하늘에서 분명하게 움직이고 있는 저 태양을 멈춰 버렸다. 저 움직이는 태양을 멈추고 지금 여기 멈춰있는 지구를 움직여 버린, 그 발상의 전환과 통찰력. 진짜 천재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던 일이었을 것이다.

 p.102
 천동설, 아니 지구중심이론은 얼마나 오랫동안 지배적 특권을 누려왔던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지구중심이론을 정립한 인물은 그리스의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유럽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야 말로 가장 위대한 철학자요,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밖에 없다는 견해를 공유하며 살았다.
p.103
지구중심이론은 코페르니쿠스가『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발표한 1543년까지 무려 1800년의 장수를 누린 이론이다. 대철학자가 주장하는 이론이요, 『성경』이 지지하는 이론인데, 누가 이 장엄한 권위를 반박한다는 말인가! 

 코페르니쿠스가 체계화한 이론인 지동설은 그 이론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만, 정말 내가 소름돋았던 것은 그의 발상이 가진 불온함 그 자체였다. 중세 천년의 지루할 정도로 거대했던 종교의 권위 앞에서 그 모든 것을 뒤집으면서도~ 말이 안되는 헛소리를 지껄이고도 그 이론과 이름이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했다. 만약 조선이었으면 멸문지화를 당하고도 모자라 그의 모든 이론은 분서갱유 됐을 지도-_-;;;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살던 시대에 지동설을 주장한다는 것은, 도대체가 그것을 사고하고 이론화 한다는 것 자/체/가 용납이 안되는 시대였던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그의 이론을 만들고 나서도 36년 동안을 내놓지 못하고 고민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론을 내놓은지 1년도 채안되서 도망치듯 세상을 떠나버렸다. 1506년부터 집필을 시작해 1530년에 완성하고 그것을 공개하기까지 1543년. 어찌보면 그 인생의 대부분. 그는 얼마나 무섭고 고독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와 성경과의 싸움. 그러니까 그것은 어찌 보면 전체역사와 전체 인류와의 싸움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p.113
인간의 의식은 보수적이다. 젊은 날 한번 익힌 사유와 가치의 체계는 평생 간다. 보수적인 당파의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보적 인사라 자처하는 사람들도 그러하다. 한번 지어놓은 사유의 집을 부수어 버리고, 그 폐허의 자리에 새로운 사유의 집을 짓는 일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특정의 사유체계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지독한 두려움을 견딜 수 있는 사람, 그가 곧 철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동설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맞는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소박한 솔직함 때문이었을 것이고, 진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는 우직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철학콘서트 저자인 황광우씨의 말대로 그는 과학자 이전에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대단한.

지금은 누구나 믿고, 과학 시간에 당연하게 배우는 지동설. 이 지동설을 코페르니쿠스는 세상에 내놓자 마자 죽어버렸고, 그의 이론을 주장했던 부르노라는 한 철학자는 종교재판에 의해 화형당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의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주장한 죄로 1633년 로마교황청에 의해 종신가택연금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360년이 지나서야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과학자 갈릴레이를 단죄한 것이 잘못된 것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 장엄한 종교의 권위는 1992-1543, 무려 449년 만에 그의 사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코페르니쿠스만큼 기독교도 대단하지 싶다-_-;

정말인지, 느리고 더딜지라도 역사는 발전한다. 그리고 진리는 승리한다. 누군가는 이 소박한 생각에 계몽의 변증법을 들이대며 진보와 진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믿는다. 그것을 믿음으로써만 그렇게 될 수 있기에. 믿음이 믿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댓가는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파스칼의 이론처럼 믿음에 대한 배팅이다. 끝까지 믿는다면 보여줄 것이고, 설령 틀려도 손해 보는 건 없다. 

철학콘서트2권.
1권을 너무 재밌게 읽어서 서점에서 보는 순간 냉큼 사들었고,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에 의하면 2권은 사상의 혁명을 이끈 주역들에 주목했다고 했다. 아직 변혁을 꿈꾸고 있는 나로서는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었다. 이러한 사상의 혁명 없이는 인류에게 진보 또한 없었겠지. 그래서 혁명이 더욱 소중해진다. 

포스팅은 일부러 혁명Revolution의 어원을 가져간 코페르니쿠스로 했다. 발상 혹은 생각의 '전환'을 넘어서서 거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사상은 정말로, 혁명이었다. 이보다 완벽한 혁명이, 이보다 완벽한 전복이 어디 있을까. 프랑스혁명도 소비에트혁명도 68혁명도 이보다 완벽한 전복을 이루어 내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천동설과 같은 견고한 진리도 깨지는 바에야, 무엇이 그리 자명하고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또 나는 무기력하게 살아‘지고’있었을까.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과 그를 실행할 수 있는 실천력만 있다면 현실 삶의 무기력도, 사회도 ‘혁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덧) 무함마드, 세종, 뉴턴 편을 특히 재밌게 읽었다.

철학콘서트. 2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황광우 (웅진지식하우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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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7 - [밑줄긋는 여자] - 유토피아 [철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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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ratto 2009/12/25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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